상담 중이던 한 학생이 "동생이 중학생 때 왕따를 당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동생은 오랫동안 급식도 안 먹고 혼자 떠돌았다고 한다. 교사의 무관심은 차치하더라도 옳지 않는 것에 맞서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학생이 없었다는 것이 걱정이다.
학교는 사회의 투영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지만,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 또한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인적 네트워크 중심인 사회다. 지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힘 있는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학습해 왔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불경죄이다. 집단의 특권 유지에 헌신한 사람은 보상과 보호를 받는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 있다. 재계에서는 감옥을 몇 번 갔다 왔냐가 승진을 결정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까라면 깐다'는 조폭들 신조를 관료들에게서 듣기도 한다.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비판하면 보복을 당한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봐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면 사회성이 떨어진다 여겨져 왕따를 당하게 된다. 꽤 오랫동안 "나는 왕따다"는 생각을 해 왔다. "사방에 귀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고, 대기업을 싫어하는 강성 진보라는 비난을 듣곤 했다.
"수출 대기업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정당한 이윤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기술 중심인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이 되는 신화가 창출돼야 한다. 내 아들과 딸이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주장을 한 대가였다. 정부위원회에서 힘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채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한 결과이기도 했다. 내 언행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지인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천명한 후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너도나도 공정사회를 논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그런데 공정한 거래 관행을 위한 기본 제도 확충은 뒷전이고, 어느덧 대한민국은 보편적 복지, 공동체, 평등주의 구현을 둘러싸고 논쟁 중이다.
특히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40세대와 소셜미디어 위력을 목격한 후 힘의 축은 확실하게 99%로 대변되는 서민에게로 옮겨갔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세금을 납부했던 사람들이라도 1%에 속하는 부자는 왕따가 돼버렸다. 여야는 앞다투어 1%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며 부자세 필요성을 주장하더니 새해 바로 전날 최고세율을 38%로 높이는 소득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표심을 인식한 여당은 부자 과세와 복지 확대에 앞장서고, 야당은 재벌 해체를 외치고 있다.
어느새 나는 또 다른 왕따가 됐다. "1% 부자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어야 99%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가능하다. 부자가 살고 싶은 나라가 돼야 국민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복지도 중요하지만 재정건정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세계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살아나야 진정한 복지사회가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가로 이번에는 '꼴통 보수'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국민의 열정이 더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데로 모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왕따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은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