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수출 대기업 새로운 신화 만들자
지난해 우리 기업들이 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사상 최대인 236억달러다. 외국인이 국내에 직접 투자한 50억달러에 비하면 5배가 넘는다. 통상 10억원 투자하면 일자리 12개가 만들어진다니, 지난 8년간 약 1000억달러에 이르는 순유출액이 국내에서 일자리 130만개를 앗아간 것이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복지사회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고 보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투자와 일자리의 국외 순유출 증가는 수출 대기업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수출 대기업은 합당한 경영상 이유로 생산기지를 국외로 분산하고 있다. 수출 대기업이 외국으로 가면 협력업체들도 사업 관계 유지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동반 진출하게 된다. 한 수출 대기업은 2011년 국내에 비해 6배에 달하는 인력을 외국에서 채용했다고 한다.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들을 포함하면 엄청난 일자리가 국내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외로 이전된 대부분 일자리가 대졸 청년구직자들이 기피하는 단순생산직이고, 기술 보호를 위해 고부가가치 생산 과정과 핵심 연구개발이 국내에 잔류하고 있다는 믿음과 위안이 있었다. 이런 추세가 바뀌고 있다. 생산기지를 지원하는 연구개발센터가 속속 외국에 신설되면서 우리나라 석ㆍ박사들 대신 현지인들이 채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미국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면서 `실리콘밸리 코리안 러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 연구ㆍ마케팅 조직이 옮겨가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기술 중심인 현지 중소기업들을 직접 인수하고 사업 기반을 다지고 있단다. 창의적인 한국인 엔지니어들도 개발된 기술이 보호되고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실리콘밸리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1998년 이후 15년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역사를 바꾸고 있지만, 지난해 상반기 지식재산권 사용료 지급액이 14.1% 늘어난 43억8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선진국들이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지식재산권을 더욱 강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기업들이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투자처가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우리 기업 환경이 어두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애국심으로 국내를 선택한 혁신적 인재들이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대기업의 불공정한 단가 인하와 기술 탈취에 부딪치고, 담보대출과 연대보증에 절망한다. 대기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송사와 조사가 중소ㆍ중견기업에는 자금 회수라는 도미노로 이어져 속수무책으로 부도가 나기도 한다. 대기업에는 부채를 탕감할 호재인 기업회생제도가 중소ㆍ중견기업에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실패한 기업인은 모든 것을 잃고도 쏟아지는 송사에 매몰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양형기준으로 오랜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부패와 실패, 재기불능의 바이러스 속에서 기술혁신으로 성공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망 기업인들이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처방이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처방은 수출 대기업들의 새로운 신화다. 70년대 중동 건설 신화, 80~90년대 무역 신화, 2000년대 자동차, IT기기 등으로 세계를 이끄는 수출 대기업의 신화를 뛰어넘는 또 다른 신화가 필요하다.
국가와 성장을 함께해온 수출 대기업들이 결자해지하는 자세로 기업 생태계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는 데 앞장서고, 정경유착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국내에 투자하고, 중소기업과 공생을 견인하며 사회적 책임에 매진해야 한다. 수출 대기업들이 국민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복지사회의 지름길이다.
201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