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상

2013
2012
정몽준

새누리당 국회의원

1951년 부산에서 출생한 정몽준 의원은 다양하고 많은 직책과 역할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중위를 거쳐 미국 MIT 대학원에서 공부한 정 의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힘쓰는 리더로 이미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훈장 청룡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 사장과 회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중심에 있었다. 1988년부터 2013년 지금까지 7 선이라는 기록으로 국회의원직을 이어가고 있는 최다선 의원이며, 2009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기도 했다. 또한 울산대학교와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으로서 인재양성과 글로벌 리더 육성을 통해 국가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해왔고,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과 대한축구협회 회장,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직을 맡아 문화·스포츠 방면에서도 나라를 위해 물심양면 힘써왔다.


온 국민을 환희로 이끌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와 한국 축구의 위상 변화에 정 의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정 의원은 월드컵 유치를 위해 2년 5개월 동안 지구를 38바퀴 돌며 391일을 해외에서 지내면서 마침내 월드컵 공동 개최를 이끌어냈다. 당시 대부분의 비관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헌신하고 노력한 정 의원의 모습은 리더로서의 모범을 보여준다. 온 국민의 축제였던 월드컵 때 우리나라 응원문화를 발판으로 우리 문화가 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발돋움했고, 크게 보면 이것이 지금의 한류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화와 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끈 그는 또 17년 동안 FIFA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FIFA 내의 대표적인 개혁적 인사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렇게 새로운 희망과 길을 모색하고 끈기 있게 개척하는 정 의원은 과연 존경받을 만한 리더답다.


최근에는 정당과 새로 출범한 정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진심어린 비판을 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무산에 대해 당 지도부가 총사퇴한다는 각오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고 밝힌 데에서 책임감과 각오를 중시하는 정 의원의 단단한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당이 역동성 없이 청와대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지도부가 야당만이 아니라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 등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을 통해 정치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국회와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여정에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정 의원의 소신과 행보는 대한민국이 세계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나야 진정한 복지국가가 구현될 수 있다는 글로벌 리더스 포럼의 신념과 일치한다. 대한민국 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글로벌 코리아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정 의원에게 국민의 마음을 모아 박수갈채를 보낸다.

경력

2012 - 보건복지위원회 위원(現)

2012~ 19대 국회의원(서울 동작을)

2011 -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

2009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9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現)

2008 18대 국회의원(서울 동작 을)

2008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5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4 17대 국회의원(울산 동구)

2001 ASIA SOCIETY 재단이사(現)

2000 16대 국회의원(울산 동구)

1996 15대 국회의원(울산 동구)

1994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現)

1993 미국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대학 국제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1993 대한축구협회 회장

1992 14대 국회의원 당선(울산 동구)

1988 13대 국회의원 당선(무소속, 울산 동구)

1987 현대중공업 회장

1982 현대중공업 사장

1980 미국 MIT 경영대학원 졸업

1977 육군중위 만기전역 (ROTC)

1975 서울대학교 상과 대학 경제학과 졸업

1951 부산 출생

김종훈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의장/ 외교 통상부 통상교섭 본부 본부장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로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 받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되었고,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기까지 진두지휘하였다. 현재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SOM) 의장직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외교부에서 다양한 활동과 직책을 맡아왔고, 한미 FTA를 성사시킨 김의장은 한국외교협상의 리더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특히 수출중심적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압축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에게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하여도 교역 확대가 필수적인 바, 짧은 기간에 'FTA 변방 국가에서', 'FTA 선진국' 으로 발돋움한 데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김의장의 별명은 '검투사'이다. 웬디 커틀러 미국측 대표가 '전생에 어떤 일을 했기에 통상협상처럼 힘든 걸 해야 하나고 하자 "정답을 알려줄까? 우리는 전생에 (로마)검투사였다' 라고 한 말에서 나온 별명이다. 또한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27개 부처 250여명이 참여하는 정부 대표단을 혼선 없이 지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 정부를 거치면서 국내의 심각한 반대에 부딪치면서도 흔들림 없이 명확하고 분명한 태도로 협상을 펼쳐나갔다. 협상에서도 모호한 완곡 표현보다 직설 화법으로 분명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협상의 달인의 리더십 핵심은 'One-upmanship' 이 아니라 'Relationship' 에 있다. 김 의장은 “이제까지의 교육은 One-upmarship, 즉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자세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경청을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지혜는 글로벌 리더의 중요한 자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자유를 누릴 자유가 없다. 전체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자유까지 희생하며 헌신했던 날들의 어려움을 김의장의 메일 주소에서도 읽을 수 있다. Sallnily! 맑은 호수와 파란 하늘에서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김의장을 느낄 수 있었다.

한미FTA 반대집회에서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이유로 야당은 FTA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반대하는 분들 분이 좀 풀리고 논란을 끝낼 수 있다면 날 밟고 가도 좋다. 국익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FTA가 반드시 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면 남보다 먼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통해 동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는 그의 소신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나야 진정한 복지국가가 구현될 수 있다는 글로벌 리더스 포럼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직자로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갈 수 있도록 최전선에서 뛰어온 김의장에게 모든 국민의 마음을 모아 박수갈채를 보낸다.

경력

2008.04~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의장

2007.08~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2006.0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측 수석대표

200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대사

2004.08~'07.08 외교통상부 고위관리회의 의장

2002~2004 외교통상부 샌프란시스코영사관 총영사

2000~2002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 국장

1998 주제네바 공사

1997 외무부 국제경제국 심의관

1996 외무부 의전심의관

1993 주미국대사관 참사관

1991 외무부 의전담당관

1990 외무부 특전담당관

1987 주캐나다대사관 참사관

1985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파견

1981 주어퍼볼타대사관 2등 서기관

1979 주프랑스대사관 3등 서기관

1974.11 외무부 입부

1974.05 제8회 외무고시 합격